[동시조] 오래된 책의 고백 . 정석광
아무도 모르게
10년을 그 자리에서
혹시나 들춰볼까
마음도 졸였는데
어느날
나를 들추는 손길은
먼길 떠나는 여행길
어쩌면 이럴 수가
생각하기도 싫어지네
자랑스럽던 책내음과
빳빳한 나의 청춘
이제는
부끄럽고 초라해진
이별을 준비하네
도대체 알 수 없어
내가 무슨 잘못이 있나
너희들은 무얼 보고
책을 빌려 보는 거지
나도야
가만히 들춰보면
대단하거든, 멋있거든
이제 뭐 화를 내도
울어도 변명해도
소용없어, 아무 소용없어
나는 이제 떠나거든
어쩌면
다시는 오지 못할 걸
그동안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