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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떠나간다 - 정석광
정형의 틀로 빚어내는 삶의 이야기 시조시時調詩라는 말은 자유시自由詩와 구분하기 위한 시의 형태로서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 등의 다양한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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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정형의 틀로 빚어내는 삶의 이야기
정 석 광
시조시時調詩라는 말은 자유시自由詩와 구분하기 위한 시의 형태로서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 등의 다양한 형태가 있다. 여러 가지 설說들이 있지만 시조는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줄임말이라는 학자의 주장도 있다. 자유시의 시詩와 시조의 시時는 다르다. 모든 글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시조는 시절을 노래하는 것에 의미를 두어 온 오래된 우리 문학이다.
정형시인 시조시는 초장, 중장, 종장의 3장 6구 4음보의 기본 형태를 바탕으로 각 장은 낱말의 음절 수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는데 한두 음절씩은 가감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3(4) | 4 | 3(4) | 4 |
3(4) | 4 | 3(4) | 4 |
3 | 5 | 4 | 3 |
이러한 정형성에 매몰되어 문학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많지만 뛰어난 시조시들이 많이 있어 그러한 비판을 극복하면서 꾸준히 발전해 나가고 있다.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대적인 정서를 잘 반영해야 하는 시조문학의 과제는 젊고 역량있는 시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창작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도 전통문학으로서 시조를 배우기보다는 현대문학으로서 시조를 감상하고 창작하는 지원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우수한 시조 작품들이 많지는 않지만 조금 실려 있다. 하지만 정작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시조시 작품인지도 모르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관심이 있거나 시조에 대해 알고 있어야 시조시로서 접근을 하고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현대인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시조와 시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구분은 필요하다.
시조시는 우리의 오래된 전통 문학이다. 정형의 틀 속에서 현대인의 정서를 담는 문학의 장르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발전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올바르게 시조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서를 시조시의 틀 안에서 표현하는 기회를 자주 가졌으면 좋겠다. 학교에서의 시조시 교육이 적극적으로 자리를 잡는다면 K-POP처럼 K-SIJO의 날도 자연스럽게 오지 않을까 싶다.
첫 번째 시조집 「구운몽」은 20대부터 일상의 일을 기록해 온 시편들을 모아오다 올 초에 책으로 엮었었다. 제1시조집 「구운몽」에 이어 제2시조집은 이후의 작품부터 중년의 나이까지 드문드문 쓴 작품들로 엮는다. 평론을 부탁드릴 만큼의 문학성도 없는데다 부족한 졸시拙詩들이 대부분이어서 이번에도 직접 작품집을 설명하면서 흔적을 남겨 놓기로 하였다.
먼저 1부는 자연물을 바라보는 마음을 담았다.
지난 봄 불쑥 불쑥
싹이 몇 개 돋더니만
여름내 무성하게
잎들을 펼치더라
낮이면 접었던 망울들
왼밤을 지새더라
무심히 저 자라던
그 옆에서 나는 뭔가
웃자란 새순들을
더듬기만 했었는데
미안한 마음 닫으며
시든 가지 다듬는다
어쩌면 하릴없이
받기만 하진 않았는지
삶은 그저 그렇게
놓여 있지 않았는지
차분히 분꽃을 거두며
주는 연습 꿈꿔 본다 - 「분꽃을 거두면서」전문
우리네 삶이 쉼없는 부침을 겪는 동안 계절도 철따라 상처를 이겨내며 변화를 거듭한다. 소리없이 잎을 돋우고 꽃을 피우고 한여름 묵묵히 버텨내면서 붉은 단풍과 함께 한겨울을 맞이한다. 저절로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저 한 그루의 나무, 하나의 풀뿌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쉼없이 자신의 일에 여념이 없다.
2부는 「자연, 삶을 노래하다」를 주제로 엮어 보았다.
우리 사는 삶의 이야기는 가만히 들여다 보면 자연의 이치와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쉼없이 꿈틀거리며 삶을 키워가는 수많은 움직임처럼 우리네 삶도 쉼없이 꿈틀거려야 한다.
사랑하자, 맑은 날, 흐린 날, 비내리는 날도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큰집게 벌레 한 마리, 커다랗게 춤을 추는 지렁이 대 여섯마리, 고 작은 몸집으로 분주한 개미 수십 마리, 그리고 알지 못하는 풀잎들의 나부낌까지 사랑하자
사랑의 속삭임으로 온 하늘 가득 채우자
- 「고 작은 것들의 속삭임」 전문
치열하게 살든지, 때로 느슨하게 살든지 살다 보면 누구나 마음에 하나씩의 상처를 안게 된다. 우리는 살아 있음에 살기 위해 저마다 해야 할 일들이 있다.
3부에서는 이러한 삶의 길목에서 마주치게 되는 마음들과 위로를 담아 보았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꿈틀거림을 기억하라
떠날 때는 처음부터 깊게 깊이 옹이져서
인연이 다하고 나면 아린 가슴 후려치지
우리 살은 세상밭은 산 자의 자리끼라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떠나는지
궁금턴 모든 일들도 미진微塵으로 남으리라
-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떠나간다」 전문
어릴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익숙해지는 일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걸까. 공부가 쉬운 게 없지만 그중에서도 인생 공부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수시로 닥치게 되는 모든 일들은 늘 새롭고 낯설기만 하다. 특히 익숙하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이별은 가장 낯설고 견디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4부에서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별하기까지 가장 가까이서 서로의 애환을 주고 받게 되는 가족. 이만한 친구가 없다가도 이보다 더 애달픈 일도 없다. 사랑과 그리움을 처음 알게 되고 생전 겪어보지 못한 가혹한 이별도 맞닥뜨린다.
겉봉에 수신인 누구라고 말하는데
발신인 또렷하게 누구라고 말하는데
보내지 않은 편지 하나 잉크빛 낡아간다
기다리진 않을까
어제 아니면 오늘
망설이진 않았을까
오늘 아니면 내일
보내지
못한 편지 하나
서랍 속에 그대로네
- 「보내지 않은 편지」 전문
가슴에 보내지 않은 편지 하나 넣어두고 썼다 지웠다. 어느새 흘러간 세월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
내안에 영원히
하나인 어머니
그렇게 하나 되어
변치않는 사랑으로
눈뜨는 그리움들이
한 웅큼씩 일어선다
- 「다시 어머니」 전문
아내의 이모님 조문가는 길에 삶이란 무엇일까, 죽음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인생 100년이란 게 말과는 다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만큼 살아있는 순간들이 더 소중한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가만히 고개를 들면 떠올려지는 고향의 어머님. 살아온 시간을 벗어나 몸도 마음도 멀리 있지만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시라는 마음만 가득 띄우게 된다. 철들고 헤어진 부모와 형제. 저마다의 공간에서 삶의 여정을 이어간다. 이어지는 5부에서는 이곳에서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가는 길에 마른 목을 침 한 번 꼴딱이면
칼칼한 아스팔트 경적으로 기상하고
지난 밤 흥정하던 꿈들이 단내를 뺕아낸다
- 「정체·1」 전문
고향을 떠나온 도시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로 집도 차도 넘쳐난다. 멈추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들의 행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환히 밝혀진 불빛들. 도시의 삶은 잠시도 멈추는 법이 없다. 사람은 일하고 쉬어야 하는데 도시는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다. 그 속에 너도 있고 나도 있다. 아플 것 같은 그 속에서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6부에서는 역사와 정치에 대한 작은 생각들을 담아 보았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들판에 널린 풀들처럼 펼쳐져 있지만 피고지는 자연의 이치처럼 역사의 수레는 굴러왔고 앞으로도 굴러갈 것이다. 밟히고 뭉그려져도 제몫을 해 내면서 자리를 지켜오고 지켜간다.
처용의 눈물같은 이슬을 밟으면서
왼쪽 눈과 오른쪽 귀 단단히 막아야지
설독舌毒이 퍼지지 전에
자리 조금 벌려야지
서로 다른 모습들이 어울리기 쉽지 않지
처용의 다리 속에 다른 다리 섞였다니
보았나, 누가 보았지
헛웃음만 짓게 되네
네모와 세모가 모여 별이 되는 이치는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면 된다는 말
세상의 바른 소리를
처용은 알고 있네
- 「처용의 눈물」 전문
결국은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바른 소리가 세상을 바르게 이끌어간다. 그렇게 정의는 실현되고 긴긴 세월 속에 흔적은 바래져도 역사는 당당하고 생생하게 대를 이어 기억된다.
지금까지 두 번째로 엮어낸 시조작품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다른 이의 힘을 빌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이 좋겠지만 이렇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지나온 인생의 길목에서 나를 만난, 내가 만난 시의 조각들詩片이 외롭지 않게 세상의 빛을 만나도록 해 주어 무엇보다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새롭거나 특별하지 않은 생각들이만 익숙하게 아는 이의 손안에서나 때로는 낯선 이의 손안에서 새롭게 피어나기를 바래본다. 앞으로도 정형의 틀 안에서 고루하게 머물지 않고 농익은 혜안慧眼으로 글을 쓰고 나눌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듬어 나가면서 정진해 나가겠다.
나 갈거야 시위를 떠나서 저 하늘로
너가 놓은 가느다란 떨림을 삼키며
다부진 꿈을 키우며 저 하늘로 갈 거야
팽팽한 기세 앞에 다부지게 여문 입술
파르르 꼬리 털며 외로운 여정 시작
남겨둔 꿈을 이으며
뚝 뚝 뚝
떠날거야
- 「활」 전문